사진으로 보는 서울의 어제와 오늘···성수동 수제화·신림동 고시촌·황학동 만물상(경향신문, 2015-02-11)

사진으로 보는 서울의 어제와 오늘···성수동 수제화·신림동 고시촌·황학동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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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호철은 1966년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에서 당시 폭발적으로 확장되던 서울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서울은 넓다. 아홉 구(區)에 가(街), 동(洞)이 대충 잡아서 삼백팔십이나 된다. 동쪽으로 망우리, 동북쪽으로는 의정부를 바로 지척에 둔 수유리 우이동, 인천가도 중간의 영등포 끝, 한강 건너의 천호동 너머, 서남쪽으로도 시흥까지 이렇게 굉장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넓은 서울도 삼백칠십만이 정작 살아 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 꽉 차있다. 집은 교외에 자꾸 늘어서지만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 일자리는 없고 사람들은 입만 까지고 약아지고, 당국은 욕사발이나 먹으면 낑낑거리고, 신문들은 고래고래 소리나 지른다. … 대관절 서울의 이 수다한 사람들은 모두가 은행이자를 받아서 살아가는 것도 아닐터인데 무엇들을 해먹고 사는 것일까.”

그때로부터 50여년이 흘렀다. 서울은 여전히 온갖 사람들이 모여 속고, 속이고, 찐득한 욕망이 넘실대는 곳이다. 하지만 거리, 골목을 들여다보면 장소마다 시간에 따라 형성되고 변화한 삶의 흔적들이 묻어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14년 서울 성수동·신림동·황학동 3개 지역에 대한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를 실시하고 보고서 3종을 발간했다고 11일 밝혔다. 올해 보고서는 <성수동 : 장인, 천 번의 두들김>, <신림동 : 대학동, 청운의 꿈을 품은 사람들>, <황학동 : 고물에서 금맥캐는 중고품시장>으로 구성된다.

■ 장인, 천 번의 두들김 ‘성수동’

성수동에는 생산부터 유통까지 수제화 제작과 관련된 500여 개 업체가 모여 있는 ‘수제화 타운’이 있다. 성수동 수제화산업은 1967년 금강제화가 금호동으로 이전하면서 명동·염천교·금호동에 흩어져있던 관련 업체들이 성수동에 집적되면서 시작됐다. 현재도 구두제조업, 구두부속부품제조업, 구두부속품도매업, 기타신발제조업체들이 성수동 주택가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다.

 

 

<성수동 수제화타운 전경 |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성수동 수제화공장은 디자인 개발 및 스케치를 하는 개발부, 수제화 패턴을 재단하는 재단사와 갑피를 제작·조립하는 제갑·저부 기술자로 구성된 제작부, 판매를 위한 영업·관리부로 구성된다. 제작 과정은 디자인→패턴(디자인을 입체·평면화하는 과정)→가죽 재단(패턴을 가죽에 옮기는 과정)→제갑(구두 갑피 완성 과정)→저부(갑피의 안감과 겉감을 붙이고 창과 굽을 붙이는 작업)→마무리로 이어진다.

 

 

<성수동 수제화 제작 과정 |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성수동 수제화타운에는 장인으로 불릴만 한 디자이너와 기술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협소한 공간에서 본드, 가죽냄새를 맡아가며 매일 15시간 이상을 작업한다. 저임금, 식사비, 4대 보험 문제 등 고질적인 노사문제도 있다.

 

<성수동 수제화 공장 작업 전경 |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관련 기사 : 성수동 골목 수제화 장인들 ‘백화점 입점’ 꿈 이루다

 

 

 

 

 

shoenartisan
보도자료 및 뉴스 2015.02.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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